자동차 업계의 ‘전통 강호’인 유럽 브랜드들이 흔들리고 있다. 유럽 완성차는 전기차 개발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한 데 비해 성과가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는데다 의존도가 높았던 중국 시장에서 판매량이 급감하고 있는 실정이다. 유럽 차의 미래 전망이 어두워졌다는 시장 평가가 나오면서 주가도 급락세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유럽 자동차 브랜드 5곳의 주가는 올해 들어 모두 하락했다. 폭스바겐 주가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증시에서 올해부터 18일(현지시간)까지 18% 빠졌고, 스텔란티스는 이탈리아 밀라노 증시에서 연초 대비 35.5%나 폭락했다. 고급차 브랜드도 마찬가지다. 포르쉐 주가는 15% 급락했고, BMW와 메르세데스 벤츠도 각각 같은 기간 26.7%, 9% 하락했다. 유럽 자동차 중에선 르노가 그나마 선방했지만 연초대비 5.8% 오른데 그쳤다.
유럽 자동차 업체들의 주가가 부진한건 미래 성장 잠재력이 어두워졌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볼보는 최근 2030년 전기차 전환 계획을 폐지하면서 100% 전기차 판매를 90% 하이브리드카로 채우고 나머지는 내연기관으로 대체하겠다고 밝혔다. 볼보가 내연기관 생산을 줄이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판매 목표를 10% 줄였다고 업계에선 보고 있다.
BMW는 올해 영업이익(EBIT) 마진 전망치를 기존 8∼10%에서 6∼7%로 하향 조정한다고 밝힌 지난 10일에만 주가가 11% 폭락했다. 2020년 3월 이후 최대 하락폭이다. 올해 상반기 BMW 판매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2.3% 늘어 선방했지만, 자회사 미니와 롤스로이스 판매량은 각각 18.7%, 11.4% 급감했다. 폭스바겐은 지난 2일 비용 절감 목표치를 기존 100억유로에서 40억∼50억 유로 더 높이겠다며 독일 내 공장 폐쇄와 정리해고를 예고했다.
시장에서도 이런 악재가 반영되고 있는 것이다. 시장분석업체 코이핀에 따르면 유럽 브랜드의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PER)은 한 자릿수로 매우 낮은 수준이다. 폭스바겐의 PER은 3배, 스텔란티스와 르노는 PER이 3.1배다. 프리미엄 브랜드인 BMW와 벤츠는 각각 4.3배, 4.9배다. 통상 PER이 낮으면 저평가되어 있는 종목으로 꼽히지만, 지나치게 PER이 낮다면 미래 실적이 급감할 가능성이 크거나 기업 내부에 문제가 생겼다고 해석한다.
특히 유럽 차의 안방인 유럽 전기차 시장 성장세가 빠르게 식고 있다. 유럽자동차공업협회(ACEA)에 따르면 올 상반기 유럽 내 전기차 판매량은 1년 전보다 1.3% 증가한 71만2637대에 그쳤다. 유럽차 업체들은 막대한 개발 비용을 투자했지만 가성비를 앞세운 다른 업체들과 경쟁이 심화하면서 성과를 내기 어려운 현실이다.
업계 관계자는 "유럽 자동차 업체들은 거시 경제가 불안한 상황에서 아시아 업체들과 경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전기차 캐즘이 지속되면 시장 신뢰를 회복하는데 시간이 오래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신정은 기자 newyear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