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이맘때 반복되는 풍경입니다. 새해에는 뭔가를 해내겠다고, 더 열심히 살겠다고 결심하는 거죠. 어차피 1주일쯤 뒤에는 외면할 자신과의 약속이라도 말이죠.
연초마다 반복해온 다짐이 스스로도 멋쩍게 느껴질 때, 거꾸로 이런 결심은 어떨까요.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I would prefer not to).” 이 문장은 1853년 발표된 허먼 멜빌의 소설 <필경사 바틀비> 속 유명한 대사입니다. 왜 바틀비는 이토록 단호하고 불순한 문장을 내뱉었던 걸까요.
소설의 화자는 변호사. 미국 월가에 번듯한 사무실을 갖고 있죠. 일이 많아 여러 명의 필경사를 고용하고 있습니다. 필경사는 예전에 문서나 책 등에 글씨를 쓰거나 문서를 베끼는 일을 하던 일종의 필기 노동자예요.
일손이 모자라자 변호사는 바틀비라는 새 필경사를 고용합니다. 바틀비가 밤낮없이 일을 해대서 변호사는 기뻐하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않아요. 갑자기 바틀비가 이렇게 말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시작은 변호사의 지시를 가끔 거부하는 정도였는데 점차 거절이 늘어갑니다. 우체국 심부름도, 서류 묶는 사소한 잔업도, 퇴근도 안 하는 편을 택하겠다고 해요. 급기야 본업인 필사도 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변호사는 바틀비를 해고해요. 그것조차 바틀비는 거부합니다. 사무실 밖 현관을 차지하고 떠나지 않습니다. 변호사는 사무실을 옮기기로 합니다. 시간이 흘러 변호사는 건물 주인이 바틀비를 부랑자로 신고해 교도소로 보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바틀비는 그곳에서 생을 마감합니다.
바틀비는 대체 왜 그랬을까요? 바틀비를 쉽게 이해할 수 없어서 여러 가지 독해가 가능하다는 게 이 작품의 매력이죠. 번역자에 따라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혹은 “안 하는 편이 좋겠습니다”로 번역되는 바틀비의 말은 자본주의에 대한 저항으로 해석되기도 하고, 부속품처럼 살아가는 인간의 우울증으로 읽히기도 합니다. 바틀비의 무기력은 무명 작가 멜빌의 좌절이 투영된 거라고 보기도 해요. <필경사 바틀비>는 멜빌이 ‘해양 문학의 고전’ <모비딕>을 출간하고 2년 뒤 발표한 소설입니다. 지금이야 두 작품 모두 고전으로 추앙받지만, 당대에는 전혀 주목받지 못했어요.
온갖 새해 다짐이 홍수처럼 쏟아지는 중입니다. 이럴 때 바틀비의 문장을 곱씹어봅니다.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가 아니라 ‘내가 무엇을 하기 싫은지’ ‘내가 무엇을 하지 않는 편이 좋을지’부터 정하는 거예요. 혹은 올해는 조금 느슨하게 살아보겠다는 다짐도 누군가에게는 필요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