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6월 10일 문재인 대통령님을 오랫만에 찾아뵙고 평산책방에서 책방지기로 잠시 봉사한 후 독주를 나누고 귀경했습니다.(…). 2019.8.9. 검찰개혁의 과제를 부여받고 법무부 장관 후보로 지명되었지만, 저와 제 가족에게는 무간지옥(無間地獄)의 시련이 닥쳐 지금까지 진행중입니다. 과오와 허물을 자성하고 자책하며, 인고(忍苦)하고 감내하고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모든 것이 부정되고 폄훼되는 역진(逆進)과 퇴행의 시간 속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지도도 나침반도 없는 ‘길 없는 길’을 걸어가겠습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6월 10일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올린 것을 두고 정치권이 시끄럽다. 맨 마지막 문장이 내년 총선 출마를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조 전 장관이 출마한다면 우선 독자 출마냐, 더불어민주당을 등에 업느냐가 관심이다. 민주당의 속내는 복잡하다. 친문(친문재인) 진영 일각에선 조 전 장관을 두고 ‘이재명 대체재’, ‘포스트 이재명’ 얘기까지 나온다. 이 대표에 대한 사법 처리 이후 그를 내세워 당을 장악하려는 시나리오의 일환이다. 길게는 대선까지 염두에 둔 포석이다. 하지만 조 전 장관이 민주당 소속이든 아니든 출마하게 된다면 선거판이 온통 ‘조국의 늪’에 다시 빠져들어간다면 결코 유리할 게 없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한 중진 의원은 “조 전 장관이 독자 출마하든 아니든 민주당과 이미 한 묶음이 돼 버렸다”며 “지난 대선과 지방 선거 패배가 조국 사태에서 비롯된 만큼 그가 출마한다면 온통 선거 이슈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고 중도층이 떨어져 나가면서 민주당으로선 악재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조응천 의원은 출마를 접으라고 직설적으로 요구했다. 그는 CBS 라디오에 출연해 “그의 출마 자체가 민주당에 큰 부담”이라며 “우리가 왜 대선에서 졌느냐. 민주당에 조금이라도 애정이 있다면 출마를 접으시는 게 좋다”고 요구했다. 이어 “중도층이 돌아서고 윤석열 정부 심판 프레임을 야당 심판 프레임으로 바꾸기 때문에 총선 패배를 자초할 것”이라며 “무소속이나 신당으로 나간다고 해도 워낙에 상징적인 인물이었기 때문에 민주당에 부담이 엄청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다른 의견도 있다. 처럼회를 비롯한 민주당 내 강경파 의원들이 주로 조 전 장관을 두둔하고 있다. 정청래 최고위원은 “딸 동양대 표창장 문제 등으로 엄마는 징역 4년, 아버지는 교수직 파면, 딸은 입학 취소”라며 “표창장 하나로 멸문지화를 당한 조국 교수의 가족,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라고 했다. 그는 서울대가 조 전 장관을 교수직에서 파면하기로 한 것에 대해 프랑스의 간첩 조작 사건인 ‘드레퓌스 사건’에 빗대기까지 했다. 박성준 대변인은 언론 인터뷰에서 “(내년 총선은) ‘윤석열 정권 심판론’으로 가야 한다”며 “그에 적당한 인물이라면 그 누구도 막을 필요가 없다”고 했다. 한 중진 의원은 “조 전 장관은 검찰 독재 대항마라는 상징성이 크다”며 “강성 지지층을 결집시킬 수 있다는 측면에서 그를 최대한 활용한다면 선거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친명계 일각에선 조 전 장관이 문 전 대통령을 만난 것을 계기로 출마를 시사하는 발언을 한 배경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친명계의 한 의원은 “친문재인계를 비롯해 비명계는 이 대표의 사퇴와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을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다”며 “이 대표가 사법 처리되고 물러나게 된 이후 친문계의 시나리오에 ‘조 전 장관 대체재’가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런 점에서 친명계 좌장인 정성호 의원이 직접 나서 조 전 장관 출마에 부정적인 뜻을 나타낸 발언을 한 것은 예사롭지 않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친문계의 한 의원은 “역시 사법 리스크를 겪고 있는 조 전 장관이 친문계의 대표로 당을 이끈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라며 “친문계 중에서도 조 전 장관 출마에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의원이 많다. 친문과 조 전 장관을 억지로 엮지 마라”고 반박했다.
조 전 장관이 출마한다면 지역구로는 서울 관악갑이 거론된다. 그는 2022년 3월 관악구 봉천동으로 이사했다. 부산·경남(PK) 출마설도 나온다. 부산은 그의 고향이고 경남 창원 진해는 그의 부친이 이사장을 지낸 웅동학원이 있다. 문 전 대통령이 국회의원을 지낸 부산 사상구 출마설도 나온다. 현재 이 지역구는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이 현역으로 있다. 성사 땐 전·현직 대통령 측근 간 ‘빅 매치’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국민의힘 내심은 ‘조나땡(조국이 나오면 땡큐)’이라는 분위기다. 정의와 공정을 선거판 이슈로 끌어들인다면 절대로 유리한 게임이라는 것이다. 장예찬 최고위원은 “조 전 장관 등장 그 자체로 다시 한 번 내로남불 대 공정이라는 프레임이 형성된다”며 “(출마를)바라마지 않는다. 출마하라고 새벽 기도 다니고 싶다. 그의 출마는 야당엔 악재, 여당엔 호재”라고 했다.
조 전 장관 출마의 걸림돌은 사법적 문제다. 그는 지난 2월 1심 재판에서 자녀 입시 비리와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에 대한 청와대 감찰 무마 혐의로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으로 나올 경우 공천 자체가 힘들 수 있다. 민주당 22대 총선 후보자 선출 특별 당규에는 ‘공직 후보자로서 중대한 비리가 있다고 인정되는 자를 부적격 처리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이 때문에 법의 심판을 받고 있는 사람이 유권자의 심판을 받겠다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많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정치 평론가는 “조 전 장관은 적어도 법원의 최종 판결이 나올 때까지는 자중하는 게 상식이고 최소한의 금도를 지키는 것”이라며 “나라를 또다시 두 동강 내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홍영식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