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복인지, 여성복인지 구분하기 힘든 ‘젠더플루이드’ 의류가 패션업계를 강타하고 있다. 남성·여성복의 경계를 허물어뜨린 의류는 주로 여성복에서 등장했다.
최근엔 남성복에 여성복의 요소를 도입하는 흐름이 업계에 확산하는 추세다. 메이저 패션기업인 삼성물산, 신세계인터내셔날, 한섬 등이 차세대 패션 트렌드 중 하나로 젠더플루이드를 꼽고 허리가 잘록한 코트를 비롯해 화려한 스카프, 진주목걸이, 핸드백 등 남성용 의류·액세서리를 내놓고 있다.
민트와 라임 등 남성복에서 잘 사용하지 않던 화려한 색상도 도입했다. 여성이 입거나 사용할 법한 짧은 반바지, 시스루룩, 스카프 등을 선보였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젠더플루이드는 3~4년 이어질 패션 트렌드인 만큼 관련 제품을 꾸준히 생산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성복의 대명사인 신세계인터내셔날의 ‘스튜디오 톰보이’는 지난해 9월 오프라인 매장을 내고 남성복 사업을 확대 중이다. 톰보이 남성 패션의 올해 1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보다 64% 늘어났다. 이 기간에 전체 톰보이 매출에서 남성 옷이 차지하는 비중은 5%에서 10%로 두 배 뛰었다.
톰보이는 여성복과 남성복이 디자인 측면에서는 거의 차이가 없는 게 특징이다. 여성복에 주로 쓰이는 꽃무늬, 파스텔 색상, 리본 모양의 장식 등을 남성복에 도입하면서 성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의류에 남성·여성성을 강조하기보다 취향에 따라 고를 수 있도록 경계가 모호한 의류를 내놓는 게 최근 특징”이라고 말했다.
LF의 ‘질스튜어트 뉴욕’은 올해 봄·여름 시즌을 겨냥해 남성용 핸드백 ‘헥사곤 크로스백’을 내놨다. 여성이 주로 들고 다니는 미니백 스타일이다. 20~30대 남성을 주 소비층으로 겨냥해 제작한 제품으로 지난해 12월 말 출시된 지 두 달도 되지 않아 동났다. 한섬의 ‘시스템’도 일부 가죽 재킷과 셔츠 등을 사이즈만 달리해 남녀 모두에게 판매하고 있다.
패션업계에서는 샤넬·구찌 등 럭셔리 브랜드가 젠더플루이드 의류를 계속 내놓고 있는 만큼 이런 유행이 꾸준히 지속될 것으로 내다본다. 강혁 디자이너는 “젠더플루이드 의상 수요는 국내에도 충분히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 젠더플루이드
genderfluid. 성(性)정체성은 고정적이지 않고 물, 공기처럼 유동적으로 전환한다는 사회학적 용어. 패션기업들이 핫팬츠 등 여성이 주로 입는 옷을 남성의류에 접목하면서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배정철 기자 bj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