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재산권(IP)은 그간 게임업계에서 흔히 쓰이던 개념이다. 하나의 게임이 성공하면 그 게임의 세계관과 캐릭터를 활용해 다른 형식의 게임을 만들거나, 이를 빌려주고 로열티를 받기도 한다. 최근에는 이런 IP 사업이 식품·외식업계에서도 주목 받고 있다. 유명 셰프와 맛집의 레시피를 활용한 가정간편식(HMR) 출시가 줄잇고 있다. 외식 물가가 급등하면서 집에서라도 저렴한 가격에 유명 식당의 음식을 경험해보고 싶은 소비자들이 늘어나면서다.
캐비아는 47년 전통의 강남 대표 갈빗집 삼원가든의 2세인 박영식 대표가 2020년 창업한 회사다. 미국에서 호텔경영학을 공부하고 한국에 들어온 박 대표는 아버지와 함께 삼원가든을 경영하면서 셰프 IP 사업에 눈을 떴다.
그는 셰프 IP 사업의 확장성에 주목했다. 200조원에 달하는 외식업 전체 시장이 모두 잠재적인 협력사가 될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박 대표는 우선 블루리본서베이에 선정된 식당 중 1000곳과 IP 계약을 맺는 것을 1차 목표로 잡았다.
단순한 HMR 출시를 넘어 셰프의 철학을 유지하면서도 가격대를 낮춰 대중성을 높인 세컨드 브랜드 식당을 만들고, 연예인 소속사처럼 셰프들을 전문적으로 관리하는 사업 모델도 구상하고 있다. 박 대표는 "사업과 관련된 나머지 일은 모두 캐비아가 처리하고, 셰프는 요리에만 집중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게 우리의 전략"이라고 말했다.
캐비아는 최근 편의점업계 최초로 HMR 사업부문을 신설하는 등 HMR 경쟁력 강화에 공을 들이고 있는 GS리테일과 손잡고 본격적으로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지난해 400억원의 매출을 거뒀던 캐비아는 올해 매출 1000억원을 넘어서겠다는 계획이다.
이에 더해 외식 물가 급등이 HMR 성장세에 기름을 부었다. 코로나19 유행으로 집밥 문화가 확산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HMR 시장 규모는 2조8800억원으로 집계됐다. 3년 전(2조619억원)에 비해 39.7% 커졌다. 유로모니터는 내년엔 HMR 시장이 3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내다봤다.
유명 셰프와 파인다이닝(고급 식당)도 IP를 활용한 HMR 출시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수익성 개선을 위해서다. 업계에선 미쉐린 가이드에 선정될 정도의 파인다이닝은 사실상 이익을 거두긴 어려운 구조로 운영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광주요그룹이 운영하던 한식 파인다이닝 가온은 지난 1월부터 휴업에 들어가기도 했다. 가온은 미쉐린 가이드로부터 국내 식당 중 유일하게 7년 연속 3스타로 선정된 곳이다. 가온을 운영하는 가온소사이어티는 적자의 늪에서 허덕이다 완전 자본잠식에 빠진 상황이다.
외식업계 관계자는 "좋은 식재료를 쓰면서, 높은 임대료를 내고, 질 높은 서비스를 위해 인건비도 많이 투입하다보니 파인다이닝은 음식 가격이 비싸더라도 이익을 내기가 쉽지 않다"며 "IP를 활용한 사업이 셰프와 파이다이닝 입장에서도 활로가 될 수 있다"이라고 말했다.
박종관 기자 p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