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건강보험 당기수지(수입-지출)가 3조6000억원대의 '반짝' 흑자를 냈다. 정부는 작년 10월까지만 해도 지난해 건보 흑자 규모가 1조원에 머물 것으로 내다봤지만 기록적인 고용 호조세가 이어지면서 흑자 규모가 커졌다. 하지만 국민의 세금인 정부의 국고지원금을 수입에서 제외하면 작년 역시 적자나 마찬가지인 데다 향후 급격한 고령화와 고용둔화로 인해 건보 재정은 적자 전환이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28일 발표한 '2022년도 국민건강보험 재정 당기수지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건보 당기수지는 3조6291억원 흑자를 기록했다. 2021년 흑자 규모인 2조8229억원 대비 8062억원(28.6%) 증가했다. 흑자로 남은 금액을 적립해놓은 '누적 준비금'은 2021년 20조2410억원에서 지난해 23조8701억원으로 늘었다.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는데도 지난해 건보 재정이 예상을 웃도는 흑자를 기록한 이유는 지출보다 수입이 가파른 속도로 늘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건보 총수입은 88조7773억원으로 전년 대비 10.3%(8조2852억원) 늘며 최근 5년 중에서 가장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코로나19 방역조치 해제로 인해 지난해 기록적인 고용 호조가 이어진 점이 건보 총수입 증가를 이끌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취업자가 늘면 건강보험 가입자도 자동적으로 증가해 건보 보험료 수입이 늘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연간 취업자 증가폭은 81만6000명으로 2000년 이후 22년 만에 최대를 기록했다. 특히 건보공단은 상용근로자의 꾸준한 증가로 인해 지난해 건보 직장가입자 수가 전년 대비 3.2% 증가했다고 밝혔다.
건강보험료율과 개별 근로자의 평균적인 임금이 매년 꾸준히 상승한 점도 건보 수입이 불어난 원인으로 꼽힌다. 직장가입자의 경우 건강보험료는 보수월액에 건강보험료율을 곱한 금액으로 계산되는데, 건강보험료율은 2021년 6.86%, 2022년 6.99%, 2023년 7.09% 등으로 매년 오르고 있다. 직장 보수월액 평균 역시 2021년 2.1%, 2022년 4.0%씩 각각 상승했다.
지난해 건보 총지출은 85조1482억원으로 전년 대비 7조4790억원(9.6%) 늘었다. 2019년(13.8%) 이후 3년 만에 가장 높은 증가율이다. 코로나19로 감소했던 의료 이용이 지난해 빠른 속도로 회복된 결과다. 건보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경증 급여비로 지출된 건보 재정은 19조3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11.3% 늘었고, 호흡기 급여비로 지출된 건보 재정은 2021년 3조4000억원에서 지난해 4조7000억원으로 36.8% 급증했다.
지난해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의 확산으로 인해 코로나19 검사·치료비로 인한 건보 지출이 2021년 2조2000억원에서 지난해 4조1000억원으로 크게 불어난 점도 건보 총지출이 확대된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건보공단은 또 지난해 수가(환산지수) 인상으로 약 1조원 건보 지출이 증가했고, 건강검진 수검인원 증가 등도 총지출 증가에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총수입이 총지출보다 빠르게 늘어 건보 재정이 지난해 흑자를 기록하긴 했지만, 이는 정부가 적자를 보전하는 용도로 세금을 투입했기 때문에 나타난 착시현상이라는 지적도 있다. 정부는 2007년부터 건보의 당해연도 보험료 예상수입액의 최대 20%를 국고로 지원해오고 있다. 지난해 건보 재정에 투입된 정부지원금은 약 10조5000억원이다. 작년 건보의 당기수지 흑자금액 3조6291억원에서 정부지원금을 빼면 사실상 6조9000억원 안팎의 적자가 발생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문제는 정부의 국고 지원이 계속 이뤄지더라도 향후 급격한 고령화로 인해 건강보험의 당기수지가 조만간 적자로 전환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정부는 지난해 10월 건보 당기수지가 올해 1조4000억원 적자로 돌아설 것으로 내다봤다. 이후 누적 준비금은 급격히 줄어 2028년이면 적립해놓은 준비금까지 완전 소진될 예정이다. 정부는 현재와 같은 상황이 이어지면 건강보험 누적적자가 2060년까지 5765조원으로 늘어나고 2070년이면 7000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보고 있다.
고용지표 역시 둔화하고 있어 당장 올해엔 작년과 같이 건보 수입이 큰 폭으로 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정부는 작년에 81만6000명에 달했던 연간 취업자 증가폭이 올해엔 10만명으로 쪼그라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정의진 기자 justjin@hankyung.com